동양 철학과 자유에 대한 탐구는 매력적이며 철학적으로 풍부한 주제이다. 동양 철학 중 장자를 읽으며 자유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강신주 철학자의 장자와 대붕에 대한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늦게나마 듣고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 자유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으면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중국 철학가 장자(莊子)의 관점을 중심으로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찰을 진행해보겠다.
북쪽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물고기의 이름은 ‘곤’이다. 곤의 둘레 치수는 몇 천리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컸다. 그것은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은 ‘붕’이다. (중략) 메추라기가 대붕이 나는 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뛰어서 위로 날며, 수십 길에 이르기 전에 수풀 사이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퍼덕거린다. 그것이 우리가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인데, 너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중략) 바람의 부피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커다란 양 날개를 몸에 실어 날 수 있는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붕은 구만리를 날아올라 자신의 밑에 바람을 두었을 때만 자신의 무게를 바람에 얹을 수 있는 법이다. 남쪽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려면 자신의 등에 푸른 하늘을 지고 앞에 명료한 시야를 얻어야만 한다.
- 『장자』 중 「소요유」
위 장자의 글 한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붕은 가상의 새이다. 메추라기와 비견하여 어마어마하게 큰 새이다. 물론 장자를 다 읽지 않고는 이 부분만 보았을 때 대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한마디로 여기서 메추라기의 비행은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지니는 생활속의 자유라고 할 것이요, 대붕의 비행은 어렵고 힘든 고난을 이겨내고 스스로 극복하여 만들어 내는 '진정한 자유'를 의미한다.
위 소요유 글을 다시 인용하겠다.
"바람의 부피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커다란 양 날개를 몸에 실어 날 수 있는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붕은 구만리를 날아올라 자신의 밑에 바람을 두었을 때만 자신의 무게를 바람에 얹을 수 있는 법이다.장자는 중국 전국 시대의 철학자이다."
대붕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즉, 자유롭기 위해서는 큰 부피의 바람이 있어야 한다. 그 바람이란 폭풍이나 태풍고 같은 크고 강력한 것이며 바로 대붕이 그 밑에 둔다고 할 때 그것은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낸다는 뜻으로 '조건'이나 '역경', 어떤 '험한 것' 또는 '욕망'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가로막지 않고 싸워 이겨야 할 것도 견뎌내야 할 것도 없을 때 주어지는 자유, 그것은 일견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철학에서 그런 자유에 대해 논할 이유가 있겠는가.
장자가 말하는 메추라기의 자유는 그런 의미에서 소극적이다. 대붕을 깔보던 메추라기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붕이 되어야만 '자유'를 맛보고 살아갈 수 있다.
철학자 장신주는 말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힘들어야 한다고. 바다가 움직일 정도의 폭풍이 있고 힘듦이 있어야 한다고.
조건에서 벗어나는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도 같다. 내가 내 인생 결정하니까 나는 자유롭다라고 쉽게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내 인생을 결정할때 무언가 부딪히는 게 없는가? 우리가 심사숙고해 보지 않은 그 '조건들'에 대해 알고, 싸우고, 넘어서서, 그 조건과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장자의 사상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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