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인생을 하나의 완벽한 작품처럼 그리고 싶어 한다. 모든 조각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지고,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은 어딘가 항상 삐걱거리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균열을 메우고, 어설픈 부분을 손질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결국, 삶이란 대충 여러 조각을 꿰매고 달래며 이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 과정에 너무 괴로워하거나 자책하거나 절망하진 말잔 생각이 든다.
삶은 마치 오래된 천 조각들로 만든 퀼트 같다. 하나의 커다란 천이 아니라, 크기와 색이 제각각인 천 조각들을 엮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조각들을 어떻게 엮어내느냐이다. 니체는 "상처 입은 곳으로 빛이 들어온다"고 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름다움이란 상처에서 피어난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본질 없이 태어나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삶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를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꿰매어 스스로의 삶을 엮어나가야 한다.
인생은 단순히 꿰맨다고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헝클어진 실밥을 다시 뜯어야 하고, 닳아 해진 부분을 덧대야 하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과정도 필요하다. 손질과 달램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처럼, 너무 애쓰고 힘을 줄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집착'이 아니라 '유연함'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유연함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자유의 가능성을 깨닫는 순간 시작된다"고 했다. 삶을 손질하고 다듬는다는 것은 단순한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삶을 달래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만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삶은 완벽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완의 작품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각들을 존엄성 있게 '살아내는' 것이다. 꿰매고, 다듬고, 달래며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실존주의적 예술이자 철학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며,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인 것이다. 삶은 정해진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다듬어가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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