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완벽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미학 개념인 '와비사비'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한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함과 일시성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철학이다.
한편, 서양 철학에서는 실존주의가 인간의 불완전한 조건을 탐구하며,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을 강조해왔다. 장 폴 사르트르와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유한성을 직시하며,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고민했다.
와비사비와 실존주의는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났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이 두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삶과 인간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와비사비는 일본 전통 미학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시간의 흐름과 자연스러운 불완전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오래된 도자기의 균열, 낡은 나무의 거친 결, 덧없이 시드는 꽃까지, 이 모든 것에 와비사비의 미가 깃들어 있다.
이 철학은 ‘불완전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전제를 가진다. 선불교의 영향 아래 형성된 와비사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상'을 받아들이고, 존재의 덧없음을 긍정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러한 미의식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된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상치 못한 균열과 흔적이 생긴다. 그러나 와비사비적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흔적’이 우리 존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완벽한 삶이 아니라, 흠이 있는 삶이야말로 진짜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불완전함을 직시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철학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하며, 인간이 미리 정해진 본질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불완전함이 완전함보다 중요하다라고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삶은 없기 때문이다.
와비사비가 불완전함을 미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면, 실존주의는 불완전함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강조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하며, 주어진 조건을 부정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와비사비가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들을 수용하는 미적 태도라면, 실존주의는 변화 속에서 자기 책임을 지고 의미를 창조하는 실천적 태도다. 삶이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와비사비와 실존주의는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에서 나왔지만, 우리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간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함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태도를, 실존주의는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태도를 강조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균열이 생기더라도, 그 안에서 나름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삶의 결점을 부정하기보다, 그것이 우리 존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와비사비적 태도이자 실존주의적 태도로 인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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