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코티졸'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코티졸을 ‘걱정 호르몬’이라 부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걱정은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며 사실 스트레스와 동의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걱정은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부정적 예측이다. 이는 뇌의 진화적 메커니즘이지만 과도한 걱정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 타고나길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있다. 엠비티아이에서 J 유형도 그 중 하난데, 남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다. 오늘은 코티졸을 통해 걱정을 덜하는 삶을 생각해본다.
코티졸은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몸이 준비를 갖추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코티졸은 우리의 심장 박동을 높이고, 혈당 수치를 올려 에너지를 더 제공하며, 신체가 스트레스에 맞설 수 있게 만든다. 코티졸의 분비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이다. 스트레스나 위협을 인지하면 뇌의 시상하부가 먼저 신호를 보내고, 이는 뇌하수체로 전달된다. 뇌하수체는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ACTH)을 분비하며, 이 신호가 부신으로 전달되면 부신은 코티졸을 분비한다. 코티졸은 그 이후에 우리 몸 곳곳에 작용하여 대사를 조절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며, 면역 반응을 조절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우리가 느끼는 걱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걱정'은 단순히 스트레스의 한 부분일까? 철학적으로 보면, 걱정은 시간과 긴밀히 연결된 감정이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걱정한다. 이 걱정이 극에 달할 때, 우리의 몸은 마치 실제로 위협을 받은 것처럼 코티졸을 분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코티졸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긴장감을 물리적 현실로 바꾸어 버리는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우리 뇌의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면 즉각적으로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실제 위험이든 상상 속 걱정이든 뇌는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우리의 뇌는 실체와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다. 심리적인 걱정과 불안감이 지속되면 코티졸 수치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게 되고, 이는 오히려 면역 기능을 약화시키고, 불면증과 같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코티졸 분비를 단순한 생리적 반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심리적, 철학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삶의 태도와 연결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탈융합(Cognitive Defus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걱정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메타인지를 이용하여 자신과 걱정이라는 생각을 분리해 보는 것이다. 이는 코티졸의 과잉 분비를 막고, 걱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명상과 마음챙김 훈련도 효과적입니다. 명상은 현재에 집중하고, 지나치게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습관을 줄여준다. 이는 코티졸 분비를 조절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적으로도,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고, 이는 곧 걱정과 스트레스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우리는 걱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 존재 자체가 불확실성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걱정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은 걱정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 보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내적으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외적으로는 세상의 흐름에 대해 담담해지는 법을 배우는 태도를 말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일과 달려 있지 않은 일을 우선 구분하고,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일은 아예 제쳐두고 달려 있는 일에만 전념하라고 권고한다. 걱정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적 태도는 걱정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걱정과 코티졸은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진다. 불안하거나 걱정이 엄습해 올 때, 메타인지를 사용해 한발짝 물러나 걱정을 살펴보고 그것이 통제할 수 있는 건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통제할 수 없는 거면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처러 심리학적 기법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우리는 걱정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이는 더 건강하고 릴렉스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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