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지'의 개념을 뒤집는 독특한 철학을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의 본질과,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핵심은 '의지'라는 개념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의지와 표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주장한다. 표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의 모습, 즉 현실의 '겉모습'을 의미한다. 반면, 의지는 세상과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적 힘으로, 본능적이고 비합리적인 생명의 원천이다.
그의 관점에서 의지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이끄는 근원이며, 끝없이 욕망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고통이 생기고, 채워지더라도 새로운 욕망이 생겨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삶은 끝없는 결핍과 좌절의 연속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힘이다. 그는 이 의지를 끝없는 욕망으로 묘사한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것도 모두 이 의지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의지는 충족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욕망을 하나 충족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 반복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인간을 고통으로 이끄는 원인이라고 보았고, 이 의지를 부정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지'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거나 고통을 참고 견디는 힘을 뜻한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반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는 이와 다르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참아내는 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조차도 궁극적으로 욕망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이유도 결국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의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더 큰 평온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가 의지를 부정한다고 해서 무기력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제안한다. 이는 불교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고통을 참아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고통을 의지의 본질로 이해하고, 의지를 억제하거나 초월함으로써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탐구하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인간과 세상을 움직이는 본능적이고 끝없는 욕망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지(인내심)와는 다르다. 우리가 참는 힘조차 욕망의 일부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무기력이 아니라, 고통의 근원을 이해하고 초월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의지'를 고통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힘으로 본다면,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인내를 넘어 고통의 메커니즘 자체를 이해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더 높은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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