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로, 그는 대표적인 염세주의 철학자로 불린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고통에 대한 그의 독특한 관점에서 비롯된다.
"인생은 흔들리는 진자와 같다. 한쪽은 고통이고, 다른 한쪽은 권태다."
이 유명한 인용문은 쇼펜하우어의 삶과 철학의 본질을 가장 잘 요약한다. 그는 인생을 고통스러운 욕망의 끝없는 굴레로 보았고, 이러한 관점이 그를 19세기 가장 유명한 염세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지만 결코 진정한 만족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곧 싫증이 나고, 얻지 못하면 고통스럽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삶의 비극이다.
인생의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원한다', 그 다음은 '얻는다', 마지막은 '지루해한다'.
이 말은 그의 철학의 핵심을 드러낸다. 욕망은 일시적이고, 충족은 순간적이며, 권태는 불가피하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은 '의지'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의지'로 설명하며, 이 의지가 끊임없이 욕망을 생성하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는 결코 만족을 가져오지 않으며,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킨다. 그는 "의지는 고통의 원천"이라고 말하며, 인간이 의지의 지배를 받는 한 진정한 행복을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쇼펜하우어에게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다. 우리의 모든 욕망은 근본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것들이며, 이는 끊임없는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그의 관점에서 삶은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다.
욕망 발생
욕망을 향한 고통스러운 추구
일시적 충족
곧바로 찾아오는 권태와 새로운 욕망
쇼펜하우어는 삶의 궁극적인 무의미함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헛된 것이라고 보았으며, 이러한 인식이 염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한 노력은 결국 무의미하다"는 관점을 통해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드러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염세적이지만, 그것이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예술, 의지의 부정, 연민이라는 구원의 불빛이 그의 철학에 담겨 있다. 특히 의지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일시적이지만 평온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그의 철학은 결국 고통이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이 없는 세상을 꿈꾸기보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과 그것을 넘어서는 정신적 해방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비록 비관주의자였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철학은 우리에게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고, 일시적인 해방의 순간들을 예술, 명상, 자기초월을 통해 찾으라고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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