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따뜻하게 다가올 때, 처음엔 그저 고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다정함이 계속되길 바라고,
그 기대는 조용히 내 안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다정함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한다.
기대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렇게 우리는 집착이라는 이름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상황에 마음을 매달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철학은, 이 마음의 파도 위에 잔잔한 지혜의 등불을 띄워준다.
오늘은 다음 철학을 또 되새기며 기대로 인해 잔잔하지 못한 마음을 달래본다.
기대는 내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외부의 일은 내 통제가 아니다. 오직 내 반응과 판단만이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이 내게 잘해주는 것, 그것은 그의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 친절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하고, 그 기대가 무너지면 실망하거나 화를 낸다.
이 과정 전체를 곱씹어보면, 사실 내가 기대한 것 자체가 내 고통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상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게 만든다.
기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를 훈련하는 것.
그것이 이 철학이 제안하는 평정심의 핵심이다.
불교는 말한다.
“애착은 고통의 뿌리이다.”
처음엔 선한 감정이지만, 그 감정이 고정되기를 바라면 그것은 ‘욕망’이 되고,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으로 변한다.
틱낫한 스님은 감정을 ‘지나가는 바람’이라 했다.
기대라는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을 따라가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
그게 마음을 다스리는 첫걸음이다.
장자 역시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무위(無爲)를 강조한다.
강물은 흐르고, 물결은 부딪히고, 바람은 흔들린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도 스스로를 놓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자연에 따라 사는 삶’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줄 때, 그저 ‘지금 이 순간’ 그 다정함에 감사하면 된다.
그 다정함이 내 것이 아니듯,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기대가 생기는 건 인간적인 일이다.
하지만 기대를 내 중심에 놓는 순간, 나는 그 기대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이 다정함에 감사하지만, 그 다정함에 기대지는 않겠다.”
감사는 현재를 살게 하지만, 기대는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마음의 평정은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집착 없는 사랑, 무집착의 철학 (1) | 2025.04.13 |
---|---|
에리히 프롬의 사랑 철학 (3) | 2025.04.08 |
마음의 평정 (0) | 2025.04.06 |
지성은 단언하지 않는다: 유보의 철학 (1) | 2025.04.06 |
노자의 부쟁철학 (1) | 2025.03.31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