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 편인가? 이 말은 정말 방법이 없을때나 방법이 많을 때 자신이 통제할 수 없거나 통제할 방법이 너무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냅두거나 어떤 걸 선택해서 용기있게 감행할 때 쓴다. 이런 에라 모르겠다는 태도는 순간적인 위안과 스트레스 해소를 준다. 당신이 인생에서 괴로움의 시기에 있다면 그것을 벗어나는 마음의 전략으로 에라 모르겠다라를 써보라. 대운이 오는 사람은 아무리 괴로운 상황에도 잠이 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몰라도 그의 운이 곧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현재 괴로운 상황에 있어도 무의식중에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정말 되는 일이 없고 모든게 힘든 상황에서 마음이 방황하고 있다면 "에라 모르겠다"하고 좀 쉬어보자. 편안한 마음을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가지면 서서히 놀라운 힘이 생겨난다.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불안이 지나치게 심해지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불안은 대부분 과거의 일에 대한 후회와 집착, 미래의 일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에 생겨난다. 그런데 필요치 않은 불안이라면 버려도 되는데 그걸 꼭 붙들고 있으면서 괴롭다 괴롭다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불안을 못 내려놓아 정신병원까지 찾게 되니 그 어려움을 이해는 하겠지만 먼저 자신이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는 게 순서가 아니겠는가. 불안을 내려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태도이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안에 대한 해답이 절대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 불안을 느낄 필요가 줄어든다. 또한, 불안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그게 인생이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표현은 특히 스트레스, 문제, 또는 불확실성과 마주쳤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다음과 철학적 전통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스토이시즘
스토이시즘은 불확실성과 어려움에 대한 수용과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는 철학이다. 통제 가능한 것은 통제하되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수용하고 그냥 놓아두라는 교훈이 제일 강한 철학이다. 즉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는 어떤 상황이든 수용하고, 그에 따라 적응하려는 스토이시즘적인 사고 방식과 관련이 있다.
타오이즘
타오이즘은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세계의 복잡성을 인식하는 철학이다. 따라서 "에라 모르겠다"는 태도는 때로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려는 타오이즘적인 관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다루는데, 때로는 인생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합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태도는 실존주의적 사고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불교
불교는 인생의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태도는 불교의 연기설처럼 모든게 연결되어 흘러가는 삶에 대한 지혜와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인 전통들은 어려움에 대한 태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표현과 공감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순간순간 자신의 노력으로 지헤롭게 괴로움을 이겨내며 또 그런 태도를 습관화한다면 어렵고 힘든 시기도 견뎌내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현재에 집중하라. 현재에 집중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덜 느낄 수 있다.
자신에게 관대하라.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오늘은 에라 모르겠다"라고 말해 보라.
불안이 발생할 때마다, "에라 모르겠다"라고 되뇌어 보라.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노출될 때,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로 대처해 보라.
꾸준한 노력을 통해 "에라 모르겠다"라는 태도를 실천하다 보면, 불안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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