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철학의 지형을 뒤흔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제목부터가 그의 문제의식을 응축한다. “존재(Sein)”를 묻되, 그 물음은 “시간(Zeit)”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선언이다. 그는 단순한 사물의 존재를 넘어서, 스스로에게 존재를 문제 삼는 유일한 존재, 곧 "현존재(Dasein)"를 철학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에게 있어 ‘실존’이란 무엇이며, 왜 그것은 ‘시간’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까?
오늘은 도대체 그 존재라는 것이 시간과 어떻게 연관성을 가지는 지 알아보자.
하이데거는 플라톤 이후 전통 형이상학이 ‘존재’의 의미를 잊어버렸다고 비판한다. 사물, 본질, 이데아의 영원성에 집착한 나머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회피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기 위해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그 의미를 스스로 물을 줄 아는 존재, 즉 현존재(Dasein)가 바로 그 출발점이다. 이것이 곧 실존이다.
그런데 이 실존은 결코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는다.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항상 아직 되지 않은 존재, 다시 말해 자기 앞에 열려 있는 가능성들의 총체다. 이 가능성들은 ‘미래’를 향해 열린다. 그는 실존을 “자기 앞에 자기를 내던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인간이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하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존재임을 뜻한다.
즉, 실존은 단순한 현재의 점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적 구조 속에서만 드러나는 존재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의 구조를 ‘시간성’으로 규정한다. 이 시간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계의 시간, 물리적 시간과는 다르다. 그는 '존재론적 시간'을 말한다.
이 시간은 다음과 같이 세 방향으로 열린다.
미래: 나는 나 자신이 될 가능성들을 향해 나아가며, 그 가능성 속에 나를 내던진다.
과거: 나의 이미 지나온 경험, 습관, 배경은 여전히 지금의 나를 구성한다.
현재: 나는 지금-여기에서 실존의 결단을 내린다.
이 세 방향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서로 얽혀 있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과거를 짊어지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실존을 “앞서 자신을 내던지고, 그로부터 이미 있었던 것 속으로 되돌아오며, 현재 안에 있음”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시간적 구조를 ‘현존재의 시간성’이라고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단순한 사물과 구별되는 근본적 존재 방식이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현존재가 마주하는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라고 본다.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타인을 대신시킬 수 없으며, 항상 나의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자각이 우리에게 실존의 진정성을 일깨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한한 삶 속에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죽음이 실존을 진지하게 만든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실존이 단순한 ‘존재함’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과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실존은 시간을 품는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가능성을 살고 있는가?"
"당신은 단지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과거의 경험, 현재의 선택, 미래의 불안과 희망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이 시간의 역동성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실존한다.
실존이란 단지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내는 존재 방식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기 가능성을 선택하고, 그 선택 안에서 책임지며, 자기 자신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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