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욕망 , 우리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모든 물질적인 부정성에 따라 다니며 우리를 압박한다. 진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괴로운 상황들도 만드는 게 돈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로 자본주의에 대해 철학적 화두를 던진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을 살펴보며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 무엇ㅇㄹ 생각해봐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부제)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은 20세기 철학사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영향력 있는 저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이 책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적으로 넘어서며, 자본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욕망을 포획하고, 우리를 '분열증'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가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간 정신과 사회의 근본적인 관계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다.
욕망 기계와 분열분석
기존의 정신분석학은 욕망을 대개 '결핍'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에 욕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에 반대한다. 그들에게 욕망은 그 자체로 생산적인 힘이다. 욕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연결하고, 흐름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욕망 기계'의 작동 방식과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 상품을 갈망하는 것은 단순히 그 상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광고, 사회적 압력, 개인의 무의식적 충동 등 수많은 욕망 기계들이 연결되어 '소비'라는 행위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산 활동의 결과물이다.
자본주의: 욕망의 코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이러한 욕망의 흐름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두 가지 핵심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탈영토화 (Deterritorialization): 자본주의는 기존의 사회적, 문화적, 심지어 개인적인 '영토'와 코드들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파괴한다. 신분제 사회의 엄격한 계급 구분이나 전통적인 가족 관계 같은 것들이 돈의 흐름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모든 관계가 돈으로 환산 가능해지면서, 과거의 고정된 틀이 해체된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를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의 모든 흐름을 '자본'이라는 단 하나의 보편적 코드로 환원시키는 과정이다.
재영토화 (Reterritorialization): 탈영토화된 욕망은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해체된 욕망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다시 '재영토화'한다. 브랜드, 특정 라이프스타일, 소비를 통한 정체성 형성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특정 의류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으로 '재영토화'되어,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시스템 안에 편입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의 욕망은 끊임없이 자극받고 생산되지만, 그 결과는 결국 자본의 논리에 봉사하게 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 우리를 '분열증(schizophrenia)'에 가까운 상태로 몰고 간다고 본다.
그러나 정신분열증을 병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적 코딩에 저항하는 "탈주선"으로 본다. 정신분열자는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실제 정신질환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창조적 잠재력을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흐름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극단적인 비합리성과 파편화를 만든다. 우리의 욕망은 일관된 주체성으로 통합되기보다, 단편적인 소비와 생산의 흐름 속에 흩어지고 분열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조각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이러한 분열증적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가족 중심의 정신분석학적 틀이 자본주의적 억압을 은폐하고 개인의 욕망을 왜곡한다고 비판하며, 오히려 '분열 분석(schizoanalysis)'을 통해 욕망의 억압된 흐름들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생산적인 연결을 만들어낼 것을 제안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는 단순히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회 시스템이 그 욕망을 어떻게 형성하며,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그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통찰은 여전히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강력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결국 이들이 말하고 싶었던 건, 우리가 자본주의의 획일적 코딩에 갇혀 있지만, 욕망의 혁명적 잠재력을 통해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억압이 아닌 창조로, 소유가 아닌 연결로, 뿌리가 아닌 리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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